[도서요약] 작가처럼 써라 (2014).jpg


작가처럼 써라

정제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47/ 236/ 13,000

 

 

저자 정제원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광업제련에서 근무했다. 얼마 안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마쳤다. 1999년에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서울대한국방송통신대서울산업대백제예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ㆍ『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ㆍ『문학의 즐거움』ㆍ『고전 탐독(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의 책을 펴냈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에 어깃장 놓기, 에리히 프롬처럼 제자들에게 따뜻한 사람 되기를 희망한다. 반대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 1개월 이상 서울에 머물기를 가장 혐오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과 헨드릭 빌렘 반 룬의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읽고 글 쓰며 사는 인생을 결심했다.

 

 

Short Summary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은 수없이 많다. 거기에 책 한 권을 더 보태는 이유는 단락 쓰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쓰기 책이 드물어서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단락 쓰기부터 공부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이 나에게 이 책을 쓰게 만든 셈이다. 좋은 문장 하나를 쓰기도 벅찬 글쓰기 초심자들에게 좋은 단락을 쓰는 연습은 분명 힘겨운 일이지만, 처음부터 좋은 단락 쓰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결국은 좋은 글을 쓰는 데 도달하는 기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이 책은 단락 쓰기 방법을 설명하고, 적당한 예문을 들고,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한 일은 좋은 예문을 찾은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들의 수백 권의 책을 뒤지며 좋은 예문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가장 힘들었다.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직접 익히는 것만 한 글쓰기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글쓰기! 참 문제적 화두다. 누군가가 왜 모든 사람은 글을 잘 써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답할 수 없다. 특별한 직업인을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은 반드시 글을 잘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답할 수 있다. ‘반드시좋은 글쓰기 책과 함께 제대로공부하라고. 이 책도 그중 한 권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1장 처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단순하게 써라

 

안나 카레니나행복한 가정은 모두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모비딕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이방인오늘 엄마가 죽었다, 논어즐겁게 공부하고 때때로 복습도 해보자를 첫 문장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글의 시작은, 문장이든 단락이든 이렇게 평범하다. 비범하게 평범하다. 글쓰기 초심자들이 가장 먼저 명심해야 하지만, 가장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평범하고 수수하게 글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에 실린 글 중 하나인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다의 도입 단락을 살펴보자. 작가이자 글쓰기 교수인 진서의 이 책은 초심자들에게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불필요한 단어, 반복적인 문장, 과시적인 장식, 무의미한 전문용어 때문에 숨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말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잠시 후 상당한 양의 강우가 예상된다고 말하는 비행기의 기장은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장이 너무 간소하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소한 글, 즉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은 무엇일까? 진서는 다음 단락에서 이 물음에 답한다.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것이다.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단어, 짧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이미 있는 동사와 뜻이 같은 부사, 읽는 사람이 누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 만드는 수동 구문, 이런 것들은 모두 문장의 힘을 약하게 하는 불순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순물은 대개 교육과 지위에 비례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글쓴이의 교육과 지위에 비례해서 군더더기가 많이 보인다는 진서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명예욕이나 높은 지위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권위의식은 독자들이 쉽게 공감하는 글을 쓰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 초라한 지식이나 지위밖에 가진 것이 없다면 좋은 글을 쓰는 데 일단 합격이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명료한 문장은 쓰기 어렵다. 거듭되는 퇴고를 거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명료한 문장이다. 겨우겨우 초고를 쓰긴 썼는데, 그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글쓰기 초심자들은 자신에게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퇴고를 쉽게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가르쳐온 진서는 충고한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재능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 글쓰기는 대단한 재능 혹은 높은 교육 수준과 지위를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다. 글쓰기 전문가든 초심가든,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산다. 다만 전문가와 초심자의 차이는 바로 퇴고에 있다.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생각으로 도입 단락을 간소하게 장식하고, 글의 나머지 단락들을 도입 단락에서 기술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은 여러 차례의 퇴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글은 아무나 수 있지만, 아무도 쉽게 쓸수는 없다.


한국 한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저술로 탁월한 인문 교양 글쟁이로 인정받고 있는 정민은 자신의 스승 이종은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글 잘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오래전 정민이 한시를 번역할 때였다. 번역하려는 문장은 空山木落雨繡繡(공산목락우수수)”라는 글귀였다. 정민은 이렇게 번역했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 글을 본 스승은 대뜸 ,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라고 면박부터 주었다 그러고 나서 (빌 공)’ 자를 손가락으로 짚더니 물었다. “여기 이 어디 있어?” 정민의 해석에서 을 지웠다. 그다음은 나뭇잎에서 나무를 빼버리며 다시 물었다. “잎이 나무인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다음에는 떨어지고에서 떨어를 지웠고, “부슬부슬 내리고에서는 내리고를 덜어냈다. 남은 문장은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정민은 새삼 스승이 준 가르침을 곱씹으며, 불필요한 것들만 줄여도 글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기가 바로 글쓰기의 핵심이다. 불필요한 것들억지나 과장, 불필요한 감정이나 논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이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편하게 읽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간결한 자기 생각과 사실 설명 이상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