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9평 가게로 백만장자되기 (2004).jpg


9평 가게로 백만장자되기
홍일태 /지음
열매출판사 / 2004년 7월 / 224쪽 / 12,000원


▣ 저자  홍일태
이 책의 저자 홍일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형의 권유로 떡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떡 만드는 기술에 장인정신을 부여하여 떡집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가게 좌판에서 추위에 몸을 떨며 잠을 자도, 불투명한 미래에도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아내 공미정을 만나 10년 전에 서울 강남의 압구정역 부근 광림교회 옆에 지금의 ‘건강떡집’을 개업하였다. 돈이 없어 빚으로 시작했으나, 그들은 사랑과 친절, 떡에 대한 열정으로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었다. 홍일태는 떡을 만들고, 아내는 떡과 대화하며, 그들은 떡과 손님만을 생각하며 달려왔다. 동네 방앗간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여, 깨송이 떡이나 호박 인절미와 같은 새로운 떡들을 개발하였다.


▣ Short Summary
천직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부터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우연은 신의 은혜 안에서 보면, 사실상 완벽한 신의 시나리오에 따라 작성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들어맞게 할 뿐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면, 자신의 기술로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가게에서 종업원이면서 주인의 입장, 손님의 입장을 두루 경험하는 기간을 최소한 5년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 이 기간에 형성된 끈끈한 인맥이 창업하는 데 큰 자산이 된다. 경제 불황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돈이 돈을 벌어주는 것은 거부(巨富)가 되었을 때 이야기고, 창업 단계에서는 사람이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여자를 만나, 그녀와 떡집을 운영하는 사업의 동반자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세 아이의 부모로서, 그리고 떡을 인연으로 고객과 철저하게 결속되어 있는 부부의 발가벗은 자화상이다.
 
천직 - 한 우물을 깊이 파라

빈농의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나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는 데 길들여져 있어서일까.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촌놈의 순정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바닥을 기는 노가다 일을 해도 좋다. 최소한 고향에 내려갈 때는 화려한 귀향을 해야 한다. 초라한 귀향은 내 사전에 없다’ 그것이 스무 살 적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뒤 무작정 밤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역에 내렸을 때 나의 다짐이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큰형이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종로의 빵집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을 때라 형에게 얹혀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형에게 별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형이 일하는 빵집에 들렀다. 형은 가게 안쪽의 주방에서 하얀 작업복과 머리에 요란스런 모자를 쓰고 빵을 굽고 있었다. 문가에 서서 형의 작업을 지켜보고 서 있자니 코끝이 시큰해져왔다. 한참만에 도넛을 만들기 위해 설탕을 한 움큼 쥐던 형이 흘끗 뒤를 돌아봤다. 형은 보조해주는 총각에게 튀긴 도넛에 설탕을 묻히라고 얘기하곤 나를 가게 안쪽으로 안내했다. 먹음직스러운 빵과 콜라를 내놓았다. 형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일자리를 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는지 불쑥 말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뭐냐?” “떡집이잖아.” “유명한 낙원동 떡집거리야.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제삿날이나 생일날 떡을 내놓는 풍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떡집에 가서 기술을 익혀봐라. 밥은 굶지 않고 살 수 있어. 먹고 자고 일하고 돈 벌고 기술을 배워 익힐 수 있는 것으로 저만한 직업이 흔치 않다. 게다가 떡집은 가게에서 잠을 자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 오히려 주인 입장에서는 기술자가 가게에서 자면 더 좋지. 젊은애들은 늦잠이 많은데, 가게에서 자면 새벽에 늦게 나올 염려가 없잖냐?”


나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먹고 자고 일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셈이었다. 그 길로 건너편 상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나는 처음부터 떡집에 불쑥 들어가지 않고, 인근의 조그만 가게와 허름한 해장국집에 들러 시장조사를 했다. 어떤 떡집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장사도 잘하는가를 귀담아 들었다. 나는 제일떡집이라는 가게에서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가게 구석의 좌판에서 잠을 자는 조건으로 떡집과 인연을 맺었다. 나의 사정을 이실직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의외로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신임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떡을 만드는 기술은 차근차근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주면서, 웬일인지 떡을 파는 일은 내게 맡기려 하지 않았다. 난 그저 떡 기계에서 가래떡을 뽑고 시루떡을 안치는 등 떡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주문 배달을 시킬 때는 반드시 수금까지 하도록 했다. 나를 아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어쨌든 떡을 파는 일은 한복을 곱게 입은 아가씨들이나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했다.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오십대 나이에 비해 젊고 부티가 나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아하! 만일 이 다음에 내가 떡집을 개업하게 되면 내 마누라는 떡장사를 시켜야겠다. 내 얼굴에 떡까지 팔았다가는 장사를 말아먹겠구나.’


떡을 만드는 기술에 재미를 붙이던 이듬해 1984년 5월 24일, 입대 영장이 나와 해병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해병대 500기인 나는 400기 후반 기수들에게 군기 차원에서 유난히 매를 많이 맞고 제대하였다. 1986년 12월, 해병대 만기 제대를 한 나는 그 길로 다시 제일떡집으로 돌아왔다. 주인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반겨 맞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니 정말로 떡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배워라. 성공할 거다.” 아주머니는 살붙이인 내 누이들이나 형보다 더 살갑게 나를 대했고, 나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해병대에서 경험한 거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을 익히면서 배운 술이 문제였다. 나는 일이 파하기가 무섭게 월급을 털어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아주머니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 듯 나를 나무랐다. “자네, 군대 갔다오더니 나쁜 습관이 생겼구먼.”


하지만 한번도 떡쌀을 씻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배달을 나가 늦게 오는 법은 없었다. 일만큼은 철저하게 해냈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떡집을 개업해서 살리라는 강한 신념마저 없으면 내가 이 고생을 하는 보람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어주는 주인 아주머니와 직원들이 좋아서 열심히 일했다.


인생은 만나면 헤어질 때가 있는 법. 그 날도 나는 멥쌀과 찹쌀을 구분하여 함지그릇에 씻어 물에 담가놓고 퇴근을 했다. 밤에 술을 마시고 가게로 들어가 새벽에 가게문을 열고 떡을 앉혔다.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나서 떡고물을 만들었다. 이상했다. 떡솥에서 김이 나오지 않았다. 멥쌀은 물 반죽을 해서 시루에 앉히면 김이 잘 올라온다. 통찹쌀도 찌자마자 바로 김이 올라와 도마에 놓고 치대면 곧바로 인절미가 된다. ‘이상하다. 내가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일은 정확히 해내는데… 어제 분명히 떡쌀을 제대로 구분해놓고 퇴근했는데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떡은 익었는데 김이 오르지 않는다’ 밤 사이에 쌀그릇이 뒤바뀐 것이 분명했다. “아니, 뭐하는 거야? 빨리 인절미를 내놔야 썰지.”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다. 멥쌀로 인절미를 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 아주머니는 대뜸 화부터 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해?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떡집을 하겠다는 거야?” 다짜고짜 야단을 맞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워 물었다.


그때 일하는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나는 아주머니를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 혹시 어제 누가 쌀을 바꿔놓지 않았어요?” “응, 어제 총각이 술 마시러 나가기에 쌀을 구분하지 못할까봐 주인 아주머니와 내가 바꿔놓았지.” “…” 나는 피우던 담배를 휙 내던지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아주머니 앞에 가서 욕을 해댔다. “누구 마음대로 쌀을 바꿔놓은 거요? 한마디만 물어봅시다. 어제 아주머니가 쌀을 바꿔놨소, 안 바꿔놨소?” 아주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험악하게 질문하자 아주머니는 주인다운 위엄을 가장하며 툭 던졌다. “바꿔놨어. 자네가 하도 술을 마시고 다녀서 실수할까봐 그런거지.” “아무리 미친놈이라 해도 제 밥줄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다니겠소? 아줌씨를 부자로 만들어준 것도 다 이 홍일태의 떡 만드는 기술이요. 그것을 못 믿겠다니, 아줌씨는 복을 발로 차버린 거요. 젠장, 나 그만둘라요.”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나를 믿지 않는 곳에서는 단 1분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가게에서 나와 버렸다.


촌놈의 자존심이 나를 세상 밖으로 내몰았다. 나는 그 길로 다른 떡집으로 들어갔지만, 썩 만족스럽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사당동 떡집에 머물러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입은 거칠고 술 실력만 늘어갔다. 하지만 새벽이면 언제나 말짱한 정신으로 죽기살기로 떡 만드는 데 신명을 바쳤다. ‘떡에 미친 녀석.’ 동료들은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구태여 일을 만들어서 할 게 뭐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홀로 떡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는 자신감에 흥분이 되었다.